Anthony Bourdain Parts Unknown 미국 — 그가 사랑한 식당 12곳의 발자취

2013년 4월 14일, CNN Parts Unknown 첫 화가 방송됐다. 앤서니 부르댕은 그날 백악관도, 링컨 기념관도 가지 않았다. 그는 H Street 차이나타운의 낡은 홍콩식 매장 안으로 들어가 어묵국과 만두를 주문했다. 카메라는 의원도, 대통령도 아닌 그 식탁을 비췄다. 부르댕이 보여주려 한 “진짜 미국”은 권력자의 식탁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평생 드나드는 그런 자리였다. 미국 여행 기록 블로그 워크트라블은 그가 걸었던 경로 위에 12개 매장을 올려놓고, 그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를 따라가 본다.

2013년 봄, 부르댕의 워싱턴 DC — Full Kee의 어묵국

Parts Unknown 시즌 1 1화는 워싱턴 DC였다. 제작진이 첫 목적지로 미국 수도를 택한 것은 상징적이었다. 부르댕은 그 첫 화에서 의도적으로 관광 명소를 피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509 H St NW, 차이나타운 안쪽의 Full Kee였다.

Full Kee는 24시간 운영하는 홍콩식 매장이다. 심야에도 문을 열고, 늦은 시간 배고픈 사람들을 받는다. 부르댕은 이 매장에서 어묵국과 만두를 먹으며 DC 차이나타운이 가진 이중성을 이야기했다. 표면적으로는 화려한 개발이 진행되는 도시, 하지만 그 안의 차이나타운은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었다. 한때 수천 명의 중국계 주민이 살았던 H Street 일대는 재개발 압력으로 빠르게 변해 가고 있었고, 실제 중국계 주민과 매장의 수는 줄어든 상태였다. 부르댕은 Full Kee 같은 매장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워크트라블에는 같은 H Street 블록에 두 매장이 기록돼 있다. Full Kee (509 H St NW)와 차이나타운 (627 H St NW)이 나란히 있다. 부르댕이 걸었을 그 거리를 직접 걸어보면, 지금도 붉은 패루(牌樓·차이나타운 입구 아치)가 서 있지만 주변은 이미 스포츠 경기장과 체인 레스토랑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 변화를 부르댕은 2013년에 이미 카메라에 담았다.

→ Parts Unknown Wikipedia에서 시즌·에피소드 전체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DC 식당의 두 얼굴 — Ben’s Chili Bowl과 Old Ebbitt Grill

부르댕이 DC에서 언급한 매장은 Full Kee만이 아니었다. 그는 U Street 쪽의 Ben’s Chili Bowl을 DC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상징적 장소로 꼽았다. 1958년 문을 연 이 매장은 흑인 민권운동의 시대를 고스란히 관통했다. U Street 일대가 “블랙 브로드웨이”로 불리던 시절부터 영업을 이어왔고, 도시가 폭동으로 불탔을 때도, 개발 바람이 들이닥쳤을 때도 자리를 지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전날 이 집에서 칠리 하프스모크를 먹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부르댕이 Ben’s Chili Bowl 같은 매장에 주목한 이유는 음식만이 아니었다.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버틴 식당은 그 동네의 역사책”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었다. 워크트라블 Ben’s Chili Bowl 매장 정보를 보면 1958년 개업 이래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편에는 Old Ebbitt Grill이 있다. 1856년에 문을 연 이 매장은 DC에서 가장 오래된 살룬(saloon) 중 하나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들이 단골이었고, 지금도 다운타운 한복판 15th Street 근처에서 영업 중이다. 부르댕의 취향은 본래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허름한 동네 매장 쪽이었지만, 그가 Old Ebbitt을 거론할 때는 “진짜 오래된 것에서만 나오는 무게감”을 이야기했다. 워크트라블에서 Old Ebbitt Grill 매장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Ben’s가 흑인 역사와 U Street의 기억을 품고 있다면, Old Ebbitt은 DC 권력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곳이다. 두 매장은 각각 다른 워싱턴 DC를 대변하지만, 부르댕이 두 곳 모두를 주목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가격이나 별점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였는가”였다.

14th Street — 르네상스의 한복판

부르댕은 DC를 다루면서 14th Street 복도의 변화를 언급했다. 한때 슬럼에 가까웠던 이 거리는 2010년대 들어 급속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 매장들이 들어서고, 젊은 층이 몰려들었으며, 그 흐름 속에 등장한 매장 중 하나가 Le Diplomate였다.

스티븐 스타(Stephen Starr)가 문을 연 Le Diplomate는 프랑스 비스트로 형식의 매장이다. 부르댕은 14th Street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이 매장을 그 흐름의 신호로 언급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단순히 찬성이나 반대 편을 들지 않았다. 오래된 것이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오는 것들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을 유지했다. 르 디플로마트는 그 복잡한 맥락 위에 놓인 매장이었다.

워크트라블 Le Diplomate 매장 정보에서 위치와 운영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14th Street를 따라 걷다 보면 이 거리가 얼마나 빠르게 변해왔는지를 체감하게 된다. 부르댕이 그 변화를 기록해두었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는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Pho 75와 진짜 베트남 — 부르댕이 사랑한 ‘fast and cheap’

부르댕의 음식 철학 중 가장 일관된 것은 “비쌀수록 좋은 게 아니다”였다. 그는 Kitchen Confidential(2000)에서 이미 그 입장을 분명히 했고, Parts Unknown에서도 수십 달러짜리 테이스팅 메뉴보다 허름한 공판장 음식, 노점 국수를 더 자주 선택했다. 미국 동부에서 그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매장 중 하나로 그가 꼽은 것이 Pho 75였다.

Pho 75는 필라델피아와 버지니아 알링턴 등에 위치한 베트남 쌀국수 전문 매장이다. 장식이 거의 없고, 메뉴는 단순하며, 회전이 빠르다. 부르댕이 이 스타일의 매장을 “fast and cheap”이라 부른 것은 폄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런 매장이 갖는 진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불필요한 것을 다 걷어내고 국물 하나에 집중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워크트라블에는 동부의 두 Pho 75 매장이 모두 기록돼 있다. PHO 75 필라델피아 매장과 Pho 75 버지니아(알링턴) 매장이다. 두 곳은 미국 동부 베트남 커뮤니티의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매장으로, 부르댕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민자들이 만들어낸 진짜 미국 음식”의 전형이다.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미국 음식 문화의 가장 흥미로운 층위는 이민 커뮤니티에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중국, 멕시코, 에티오피아 — 그 커뮤니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미국 안에 뿌리를 내린 음식이 진짜라는 것이었다.

차이나타운 — 사라지는 미국의 일부

부르댕은 미국의 차이나타운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뉴욕 차이나타운은 그가 뉴욕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는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와 차이나타운 경계를 걸으며 이 동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다양한 이민자들을 품어왔는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도 비슷한 맥락에서 중요하다. 1101 Race St를 중심으로 형성된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은 동부 해안 도시들 중에서도 비교적 커뮤니티 결집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개발 압력에 맞서 지역 주민들이 오랜 기간 싸워온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차이나타운 아이스크림 팩토리는 Bayard Street에 위치한 매장으로, 부르댕이 뉴욕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할 때 거닐었던 바로 그 동네에 있다. 특이한 맛의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이 매장은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를 맞아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되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곳 — 부르댕이 좋아했을 법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가 차이나타운을 자주 찾은 것은 단순한 음식 취향 때문만이 아니었다. 차이나타운은 미국 대도시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재개발의 압력을 받는 지역이기도 했다. 부르댕은 그 사라짐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014년 가을, 몬트리얼의 부르댕 — “Parts Unknown Quebec”

Parts Unknown 시즌 4 3화(S04E03)는 캐나다 퀘벡을 다뤘다. 2014년 방송된 이 에피소드에서 부르댕은 퀘벡의 프랑스어 문화권 정체성, 독자적인 음식 문화, 그리고 몬트리얼이라는 도시의 독특한 위치를 탐색했다. 퀘벡은 북미에서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쓰는 가장 큰 지역이며, 그 문화적 긴장감이 음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몬트리얼 차이나타운은 그 에피소드에서 부르댕이 들른 지역 중 하나였다. 몬트리얼 차이나타운은 다운타운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이다. 19세기 중반 철도 건설을 위해 건너온 중국계 이민자들의 역사와 함께 형성된 이 동네는, 몬트리얼 특유의 다문화적 층위를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같은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Mai Xiang Yuan Dumpling은 이 지역 대표 만두 매장이다. 퀘벡 에피소드에서 부르댕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이국적인 캐나다”가 아니었다. 프랑스어권 정체성, 그 안의 중국계 커뮤니티, 영어권과의 긴장 — 그 복잡한 구조 속에 평범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만두 매장 하나가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품고 있었다.

부르댕은 퀘벡 에피소드에서 “여기는 캐나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표현을 썼다. 그 말은 몬트리얼 차이나타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오래 남아 있는 것들 — 그것이 부르댕이 찾아다닌 장소들의 공통점이었다.

동네 식당의 가치 — Joyce Chinese Cuisine 같은 곳들

뉴저지 리버엣지(River Edge)의 Joyce Chinese Cuisine는 대형 도시의 유명 매장과는 거리가 멀다.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오는 곳도 아니고, 가이드북에 오르는 매장도 아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이 오랜 세월 드나드는 그런 중국 음식 매장이다.

부르댕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트래블 채널에서 No Reservations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Parts Unknown에서도 내내 이런 매장들에 집착했다. 그는 미슐랭 스타 셰프 식당을 전혀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교외 동네 식당, 트럭 정류장 옆 다이너, 이민자 커뮤니티의 작은 매장에 쏟았다. “그 동네 사람들이 매일 가는 곳, 그게 진짜다”라는 것이 그의 반복된 입장이었다.

Joyce Chinese Cuisine 같은 매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동네에 오래 정착한 커뮤니티가 있다는 뜻이다. 큰 도시가 아닌 뉴저지의 조용한 동네에서 중국 음식 매장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민자 역사의 한 단면이다. 부르댕이라면 그 사실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늘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았으니까.

부르댕이 우리에게 남긴 것

앤서니 부르댕은 1956년 6월 25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요리사로 출발해 2000년 Kitchen Confidential을 출간하며 작가로서도 이름을 알렸다. 그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이후 No Reservations(트래블 채널, 2005–2012)와 Parts Unknown(CNN, 2013–2018)을 통해 그는 단순한 음식 방송 진행자를 넘어섰다. 그의 프로그램은 음식을 매개로 정치, 역사, 이민, 빈곤, 전쟁을 다뤘다.

Parts Unknown은 12시즌 동안 방송됐다. 이란, 미얀마, 쿠바, 콩고 — 카메라가 쉽게 들어가지 않는 지역들을 그는 주저 없이 찾아갔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방식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2018년 6월 8일, 부르댕은 프랑스 알자스 지방 케제르스베르그(Kaysersberg)의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 그는 Parts Unknown 프랑스 에피소드 촬영 중이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Your body is not a temple, it’s an amusement park. Enjoy the ride.”
— Anthony Bourdain

그가 남긴 말들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결국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낯선 식탁에 앉아 모르는 사람과 음식을 나누는 것, 그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 믿음은 12시즌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미국 여행 기록 블로그 워크트라블이 기록한 이 12개 매장들 — Full Kee의 어묵국, Ben’s Chili Bowl의 반세기, Old Ebbitt의 160년, Pho 75의 국물, 차이나타운 골목의 아이스크림, 몬트리얼의 만두, 뉴저지 동네의 중국 음식 — 은 모두 부르댕이 사랑했을 종류의 장소들이다. 화려하지 않고, 예약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곳들. 그가 없는 지금도 그 식탁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먹이고 있다.

→ Full Kee Wikipedia에서 매장의 역사를 더 살펴볼 수 있다.


관련 글:
DC 맛집 →
도깨비 퀘벡 촬영지 →

📖 함께 읽으면 좋은 글